'신기전, 300만 돌파. 하와이 영화제 초청’ 이라는 기사를 최근에 본 적이 있다. 개봉 초창기 봤던 이 영화의 관객 수가 300만이 넘었다는 사실과 하와이 영화제 초청이라는 사실이 황당함을 유발시키기엔 충분했고, 이내 걱정까지 생기더라.
‘다크나이트’라는 걸쭉한 걸작을 본 며칠 후라 그랬는지, ‘로스트 메모리즈’, ‘한반도’와 같은 영화들을 접하고 유치뽕짝 사극은 일찌감치 접했기 때문인지 ‘신기전’은 새로운 시도 하나 없이 민족주의로 얼룩진 픽션을 팩트화 한 3류. 그 이상의 평가는 도무지 주려 해도 줄 수 없었다.
어디 하나 잘 봐주려고 해도 KBS 대하사극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영상, 억지구성으로 짜여진 시나리오, ‘논란’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주연급 모 배우의 연기, 사극에서 절 때 빼놓아선 안될 고증 또한 엉망 그 자체. 도무지 만족감을 줄 것이 없는데... 아 굳이 하나 있다면 역사스페셜에서 한번 다뤄지고 넘어갔을만한 ‘신기전’이라는 소재를 온 국민들에게 알려준 것이 이영화의 이점이라면 이점일 것이다. 물론, 신기전의 성능과 기능이 단히 왜곡되기는 했지만...
21세기의 박씨전 ‘신기전’
글을 적다보니 고등학교 시절 ‘박씨전’을 배우며 그 내용의 어이없음에 황당해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민족 최악의 굴욕과 치욕을 통쾌함으로 바꿔 주었으니 비록 픽션이지만 흥겨운 경험이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픽션에서라도 극복하고 싶은 ‘열등감’이 당대 사람들에게도 있었구나 하는 탄식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신기전’이라는 영화 또한 그 대상은 다르지만 역사적인 열등감을 반증해주고 있다. 명나라 사신에게까지 절을 올려야하는 비운의 왕인 세종, 그리고 비운의 국가 조선이 우수한 과학기술로 ‘신기전’을 개발하여 중국을 혼내준다. 당연히 역사에는 ‘신기전’에서처럼 조선이 명을 혼내주고, 명나라 황제가 조선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혹한 역사속에는 조선이 명이라는 대국 앞에 사대외교를 펼쳐야만 하는 비극이 있을 뿐이다. 고개를 돌려보면 몇 년전 개봉된 영화인 ‘한반도’ 역시 또 하나의 ‘박씨전’이고 또 하나의 ‘신기전’이다. 그리고 그 이면엔 일본의 역사적 악행을 사과받고 싶고,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열등감을 일본 대표가 고개 숙이고 사과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라는 미래를 바라는 우리의 보상심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류의 영화가 통쾌함을 준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신기전'만 하더라도 국사책을 펼치면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이 나라 저 나라에 당하며 살던 역사가 지겹도록 반복되는데 중국을 깨부수는 영화는 어찌나 유쾌상쾌통쾌를 연발하게 해주겠는가. 어디 그뿐이랴, 민족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단결하여 외세를 깨부순다는 레퍼토리의 영화는 '애국심 고취'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더라.
까놓고말해서 '신기전'은 내수용으로서 꽤나 잘 먹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나 중국에서나 비운의 역사를 뒤엎고자하는 시도, 애국심을 고취시켜 돈벌이 하려는 영화는 여러 영화에서 충분히 등장한다. 그러나 ‘박씨전’을 가지고 결코 노벨문학상을 탈 수 없듯, ‘신기전’을 가지고서는 세계적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조선이 중국에게서 조공을 받게 된다는 결말, 한국이 화약의 종주국인듯 조선에 화약을 사기위해 중국 상인들이 빌빌기는 에필로그. 그리고 적을 혼란하기위한 용도의 신기전을 마치 당대의 대량 살상 미사일인양 오버하는 내용. 외국인들은 이 영화를 역사왜곡의 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러한 생각이 파고들다보면 극 중에서 한국말을 통용하는 중국인들 이라는 작은 설정까지 ‘역사왜곡’이자 한국표 ‘국수주의’로 오해하지 않을까?
즉, 역사적 열등감을 통쾌하게 날려버리는 민족주의 영화는 내수용일때 그 가치가 있을 뿐, 밖으로 화살을 돌리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망신'이 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지고 있는 중국의 반한감정에 이 영화가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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