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을 자살로 협박하는 세상

2008/10/29 13:23
고 유니, 정선희, 고 안재환, 고 최진실. 그리고 최홍만과 최근의 인터넷 마녀사냥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인터넷 사용의 어두운 단면은 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 적은 몇몇 사건만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잘못된 온라인에 대한 가치관과 정체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키보드만 잡으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어지도록 만들었다.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 또는 키보드 전사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용감하지만 현실에서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문화 지체 현상의 한 단면을 드려내는 용어이다.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의 텍스트 매체를 이용해 공격적 언사로 그 분노를 대신 표현한다.
- 위키백과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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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앞에선 하늘도 무섭지 않았다

키보드워리어는 댓글을 통한 인신공격을 넘어서 루머 생산과 개인정보 공개, 그리고 공개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한 피해자나 그의 지인들에게 실제로 물리적 접근을 시도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미수다'에서 NSI가 가장 놀랍다고 한 것처럼, 한국의 인터넷 상에선 마음만 먹으면 공개되지 않는 정보가 드물다. 회손녀 사건에서 '회손녀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DC를 건드린 죄'라고 할 정도로 DC를 필두로 한 NSI는 가장 악질적이고 치밀한 키보드워리어의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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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워리어는 버서커다. 전투력은 높으나 까딱하면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초고속인터넷 이용자수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온라인은 썩 밝고 대안적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력의 발전을 인간의 도덕성, 혹은 정신이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매개자의 숙명과 비슷한 것이 키보드워리어의 숙명 정도가 적당할까. 끝을 모르고 발전하는 기술과 그를 좇기엔 부족한 피폐해진 인간의 정신.

비상식과 비정상이 충만한 비생산적인 온라인 활동이 최근 또다른 비상식과 비정상을 낳았다. 연예인들의 악플로 인한 내 생각엔 악플 때문은 아니지만 다들 악플이라니 일단은 자살 협박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이슈화 된 것은 최홍만의 경우. 부진한 경기력으로 팬들의 집중 포화를 맞자 자신의 홈피에 '죽고싶다'며 글을 남겼다. 그리고 이튿날 '그렇게 큰 이슈가 될 줄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글을 재차 남겼다.

대학생의 성의식에 대해 올라온 위클리조선의 글에서 다분히 오해를 살 수 있을만한 발언을 했던 여학생의 홈피 역시 악플러들의 융단 폭격에 시달렸다. 간간히 싸이월드에서 제공하는 선플달기 카드로 격려의 말이 적혀있었지만 대체로 여학생의 발언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쇄도했다. 현재 그녀의 미니홈피는 비공개로 전환되어 닫혀있는 상태다.

그녀가 악플에 시달리며 겪었을 정신적 고통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녀의 친구라고 밝힌 한 학생은 그녀가 악플에 시달려 죽고 싶다고 전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홈피를 기 전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발언은 악플러들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악플 수위를 조절하라 꼭 압박붕대를 사러가야겠느냐'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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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자살의 상징이 되어버린 압박붕대


뭔가 찜찜하다. 분명 악플을 단 키워들의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압박붕대'를 공공연히 들먹이는 피해자인 그녀의 모습 또한 정상같지는 않다. 자살을 빌미로 악플을 협박한 것일까. 그만큼 상처를 받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자살을 무기화시키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자살의 무기화는 당장엔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그녀가 다이어리에 그런 글을 쓴 이후 댓글엔 '이해하자'며 두둔하는 댓글이 연속적으로 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의 기사화된 발언에 화가 나 그녀의 홈피를 찾아온 악플러들이 다이어리의 '압박붕대'를 보고 이성을 놓아버린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는다. 키보드워리어들의 움직임에는 기폭제가 되는 어떤 사건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것이 오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해가 아니라 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은 절대적으로 비난받아야한다. 그러나 부뚜막에 불을 댕김으로써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만든 피해자들의 잘잘못이 악플에 가리워져 사라져서는 안된다. 위클리조선의 그녀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본인의 잘못에 의해 일이 발생한 것이라면 '자살하고 싶다' 따위의 말만 남긴채 자신의 잘못은 해명하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만한 일이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지, 악플러들의 못된 행동에 물타기를 하며 논지를 흐리고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가져가는 것은 비겁할 따름이다. 더불어 자살하고 싶다는 그 말 자체도 썩 떳떳한 소리는 아닐 뿐더러 말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지구인들이 안드로메다로 보낸 개념은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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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탕카 그림=우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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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이었던 온라인 저널리즘은 가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사안에 대해 3~5문장의 문제를 직접 제출하고, 10~15문장의 답안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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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시라?!

3시부터 4시 30분까지 한시간 반동안 답안을 작성했으나 쓰고 나서 한 번 읽어본 답안은 부실하기만 하다. 예상답안을 적었던 것과 너무도 큰 차이랄까. 그래도 이정도면 됐을거야 ─ 라며 교실을 빠져나와 가방 안의 예상답안을 적었던 노트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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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화가 몹시 나있어…

안 적은게 얼마야 ;ㅅ; 시험 시간만 되면 혈액순환이 쏴악 되는게 머릿 속이 하얘지는게 역시 난 4년 연속 장학금 면제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듯하다.

앺터나우; After Now

사랑방에 오마이뉴스가 국방부 지정 유해/불온사이트로 접속이 차단된다는 글이 올라와서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를 했으나 휴무. 조금 전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국방부 차원에서 내려진 공문은 없었단다. 게다가 불온사이트는 부대별로 지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단다. 하지만 검색을 해본 결과 타 부대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있었고 심지어 부대 내에서 한겨레 등은 구독을 해지하고 나섰다는 이야기까지 접한지라 의심만 증폭이 되고.

결국 오연호 교수님께 어떻게해야할지 질문까지 해보았더니 공보실로 전화하라는 답변과 함께 최대한 사례를 모으라는 답변을 받았고, 공보실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알아보고 답변을 전해주겠다며 연락처를 받아갔다. 사례 조사는 친구들을 통해 연락을 했지만 이 녀석들이 언제 컴퓨터에 접속을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고a

나도 확신은 없다. 사례도 고작 네 건에 불과하니 입증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기만하고, 민원실-정보부-이름도 알지 못할 부서 두 곳-공보실 회피테크를 타다보니 개인이 이런 일에 대해 관여할 때에 일어나는 역량부족에 대해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도 기사제보를 해놓은 상태이고.

하지만 부대 차원에서건 국방부 차원에서건, 불온서적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만큼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 누가 되었건 철저히 진상을 밝혀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시정, 혹은 징계처리를 해야할 것이다. 아마 실제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온서적에 대한 국방부의 반응을 보면 고작 오마이뉴스 불온사이트 선정에 사과나 시정, 징계를 할 일은 전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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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보다 적은 뇌용량

다만 그걸 바라보며 2메가와 1.9메가의 차이에 대해 알 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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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글이 정리가 안된다 orz 금토일 3일을 붙잡고 이 글 하나에 올인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논의를 어떻게 진행시켜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관련 글을 읽어나가다보면 해야할 것 같은 이야기는 점점 늘어만 가고, 내가 제대로 논지를 파악했는지에 대해 불신은 점점 깊어만 가고.

으앙 ㅠ 시험 답안지에 썼던 내용이라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
온라인 저널리즘의 강의를 들으면 오연호 교수님에 대해, 온라인 저널리즘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수업을 통해 새로이 바라보는 오마이뉴스는 말 그대로 혁명적이다. 시민기자제를 통한 뉴스 생산자의 표준이나 뉴스 기획과 최재·작성·평가 등의 표준에 대한 도전은 한국언론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다.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의 Bentley 교수가 "오연호는 새로운 마틴 루터"라고 표현한 것은 오마이뉴스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인듯 하다.

하지만 최근 오연호 대표와 블로거들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시민기자제를 통한 시민저널리즘과 1인미디어의 상징인 블로거들이 대립하는 상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 대표의 한미커뮤니케이션학회 기조연설문 "나는 왜 촛불에서 위기의식을 느꼈나"와 오마이뉴스 기자 겸 블로거 몽양부활의 "오연호 대표의 기조연설문을 보며 든 생각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오 대표는 기조연설문을 통해 촛불을 통해 시민저널리즘이 여전히 살이있고 진화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역동성을 오마이뉴스가 앞장서 주체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서 '오마이뉴스가 이미 올드미디어가 된 것은 아닌가'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촛불 이후 시민들에 의한 미디어리더십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포털종속적인 블로그의 한계" - "파워블로거에게 포털은 신디케이션 대상"

오 대표는 시민들에 의한 미디어리더십 지속가능성의 조건으로 참여하는 일반시민들, 이슈, 그리고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꼽았다. 그 중에서 플랫폼의 문제가 지속가능성의 취약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큰 힘을 발휘하며 1인미디어를 주도하고 있는 파워블로거들은 대체로 포털에 의해 페이지뷰를 얻는 포털종속적 상황이며, 상업적 포털이 과연 참여민주주의를 보장해주는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블로그가 참여민주주의의 수단에서 밥벌이라는 목적이 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블로그 모델보다 오마이뉴스 모델이 더 지속적 미디어리더십에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몽양부활은 오 대표의 주장에 대해 "블로그는 내집살이, 오마이뉴스는 셋방살이"라고 반박했다. 생산 주체의 측면에 있어 시민기자와 블로거 모두 주체가 시민이라는 점은 같으며,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올드 미디어적 저널리즘에 근거한 무의미한 금긋기라는 것이다. 포털종속적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파워블로거들이 오히려 포털을 신디케이션의 대상으로 보고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대리인의 편집과 관리가 시민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을 유지시켜준다는 오 대표의 이야기는 논리성이 부족하며, '블로그는 단독주택, 오마이뉴스는 연립주택'이란 비유 또한 내집과 셋방의 측면에서 비교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제6단계: 1인미디어의 등장과 시민저널리즘의 과도기

두 의견은 모두 타당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건 내가 양비론적 입장이라서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자신의 논문 「한국 인터넷신문의 진화체계」를 통해 한국 인터넷신문 발달사를 5단계로 정의했다. 하지만 이 논문은 2005년에 씌여진 것으로, 마지막 5단계를 '포털 종속적인 인터넷 신문의 출현과 멀티미디어 기능의 강화'로 정의하고 있다. 2005년 이후의 상황들, 특히 2008년의 촛불이라는 거대한 시민저널리즘의 상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 5단계 이후의 온라인 매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논문은 표준 경쟁은 선발주자의 매력 전파와 한계 노출을 통해 틈새를 만든다고 말한다. 이 틈새는 매개자의 숙명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현실의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매개자들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틈새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는 곳, 원자(atom)와도 같은 이 마지막 틈새를 오 대표는 1인미디어라고 말한다. (매개자의 숙명 설명보기)

나는 이런 논의를 하기엔 부족하지만, 배움을 바탕으로 5단계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면 1인미디어의 등장과 시민저널리즘의 과도기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수용자의 선택과 자유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선택과 자유의 확대는 인터넷을 통해 극대화되었고, 이는 수용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시민저널리즘을 가능케했다. 하지만 최초의 종속적 인터넷 신문은 인터넷의 특성을 잘 살려내지 못했고, 독립적 인터넷 신문 역시 올드 미디어 저널리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저널리즘이 궁극적으로 시민저널리즘을 추구한다고 할 때, 인터넷의 특성과 그에 걸맞는 새로운 저널리즘 표준은 필수적임에도 지금까지의 온라인 매체들은 현재까지 그를 완전히 구현해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블로그라는 1인미디어의 등장은 시민저널리즘에 있어 단비와도 같다. 블로그의 등장을 통해 수용자들은 개인의 목소리 확대하여 여론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1인미디어의 등장이다.

셋방살이의 한계

하지만 블로그로 대표되는 1인미디어는 아직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오연호와 몽양부활의 논쟁에서 드러난다. 먼저 오 대표의 기조연설문을 이야기해보자. 오 대표는 블로그는 개인의 꾸준한 관리와 관심이 필요한데 그러한 수고가 지속가능성을 낮춘다고 한다. 실제로 만들어진 이후 관리의 부족으로 정체된 블로그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이 혼자 만들고 꾸려나가는 블로그와 오마이뉴스의 단순 비교는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의 경우 여러 사정에 의해 블로그 관리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 자신의 관심사에서 자신의 눈길을 끄는 별다른 이슈가 없거나, 혹은 단순한 흥미 하락으로 소홀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러 블로그를 모아놓은 메타블로그나 블로거뉴스의 경우 오마이뉴스 버금가는 양의 기사가 매일같이 생산·소비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역시 시민기자들에 의해 꾸준히 글이 올라오지만, 수 만명의 시민기자 중에서도 아이디를 생산하고 초기에는 열정적으로 기사를 썼으나 현재는 시들해진 시민기자들을 찾자면 수없이 많다. 관리의 수고가 줄어드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근거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몽양부활의 주장처럼 역으로 대리관리는 시민들로부터 관리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덜 느끼도록 만들고, 동기를 유발하는 힘이 약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불어 '대리 관리가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부분은 오 대표의 미디어관이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과 다른 것은 아닌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오마이뉴스가 시작한 시민기자제는 누가 기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표준에 도전하여 성공하였고, 시민기자들은 수용자임과 동시에 생산자로서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들은 기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이나 검증을 거쳐야 한다. 평범한 시민은 기자로서의 역량이나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는 올드 미디어 저널리즘의 기자관과 같다. 모든 시민이 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시민저널리즘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여전히 올드 미디어에 속박된 시민저널리즘이다.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후자에 가깝다. 이 이야기는 곧 오마이뉴스가 최후의 틈새와 괴리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속박당한 시민이 만들어내는 컨텐츠의 성격은 1인미디어적이라고 할 수 없다. 엄연히 데스크가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 편집이 이루어진다. 시민기자들은 주체적으로 기사를 생산해내지만 데스크가 잘라버리면 메인에 오를 수 없다. 기존 종이신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생산한 저작물에 대해 편집권이나 저작권을 100% 담보해주지 못하면 오 대표가 비판한 포털과 오마이뉴스는 다를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포털이 상업적이기에 수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언제라도 플랫폼의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이다. 오마이뉴스가 어떤 곳이던가. 세계로부터 '시민저널리즘을 바탕으로 한 최초의 상업적 독립형 인터넷 신문'이라고 찬사를 받는 곳이 아니던가. 오마이뉴스가 시민저널리즘을 본격적으로 활성화 시켰다는 긍정적 이미지에 그들 역시 상업적 매체라는 사실은 가리워져 있다. '포털은 돈만 밝혀서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우린 민주적 참여를 강조하는 공익적 ─ 내용이 아닌 형식적 측면에서 ─ 매체니까 달라'라고 말하는 듯한 이 주장은 오 대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 대표의 이런 자존심이나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기여와는 별개로, 그들이 상업적 매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마이뉴스 역시도 그가 포털에 대해 우려하는 것처럼 내부적으로 상업성이 중시된다면 언제든 변화를 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오마이뉴스가 보수진영도 포섭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과거 박근혜 의원에게 인터뷰를 거절당한 경험에 비추어 언론으로서의 역할 증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언제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물론 매개자의 숙명에는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동반된다. 재정·정체성·조직화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수업 중 오 대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마이뉴스 역시 이런 어려움을 안고 있고, 따라서 앞서 말한 변화의 가능성은 하나의 예시나 말 그대로 가능성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것은 오마이뉴스가 최소한 현상을 유지하면서 로열티가 높은 수용자들을 묶어둘 수 있다는 장점일 수도 있지만, 블로그와 비교할 때 역동성에서 현저한 열위에 있다는 점에스 큰 약점이기도 하다.

온라인 매체는 역동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빠르게 등장하며 트렌드 역시 매일같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거대한 덩치와 매개자의 숙명에 의해






플랫폼 사업자에 의한 종속성 문제
> 사용자에게 불리한 약관, 사업자 검열, 포털 메인에 오르기 위한 비생산적 경쟁(불펌 등)
>> 몽양부활은 반대 "파워블로거들은 포털을 신디케이션 대상으로 생각"

3. 현실에 대한 생각
현재 한국적 상황에서의 1인미디어(블로그)는 포털종속적, 부인할 수 없음
> 몽양부활의 이야기는 소수 블로거의 논의
   일반적 블로거들(사실 블로거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인)은 포털을 통한 승인욕구를 충족
   아직 1인미디어의 독립성/방향성에 대한 사용자 스스로의 진지한 논의가 없었음

4. 논외) 오마이뉴스의 올드미디어성
오마이뉴스는 이미 올드미디어
오연호의 논문이 이를 증명함
> 표준과 틈새, 매개자의 숙명을 통해 스스로가 올드미디어임을 설명
>> 매개하기엔 너무 빠른 역동성을 가진 현실
     새롭게 등장한 표준/시장지배상품은 모두 생산과 즉시 현실과 괴리
     등장과 동시에 올드미디어
     > 올드미디어는 시장지배적 상황에서 후발주자의 도전을 받는 미디어(가 아닐까?)
        더불어 새로운 현실을 제대로 매개하지 못하게 되면 이미 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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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자그니의 생각

    Tracked from zagni's me2DAY 2008/11/06 12:08 del.

    펜의 노래 ~ 오연호·몽양부활의 논쟁을 통해 본 1인미디어 [작성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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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취재 실패

2008/10/06 17:49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또 전경차가 주욱 늘어서 있기에 '아, 오늘도 이랜드 노조 파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주 시사IN을  취재를 해도 좋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켜고 이런저런 뉴스를 읽고 자료를 찾아보고 질문할 거리들을 생각하길 20분. 이거면 됐다하고 집을 나섰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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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serious?

2008/10/01 03:08

학교에 바라는 글 게시판에 한 대학원생(아마도)의 글이 올라왔다. '3천 5백원 요금이라 1만 5백원을 냈더니 6천원을 돌려주기에 7천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실랑이를 하다 시간을 빼앗겼고, 결국 1천원을 돌려 받기는 했지만 누가 잘 계산한 건지 모르겠다며 구시렁대는 정산원의 모습에 화가난다. 뺄셈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정산소에 배치하면 어쩌느냐'라는 것이 그 요지였다.

이해는 한다. 뒤에 차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그렇잖아도 100% 넘게 오른 주차비로 짜증이 나있는 상황에서 계산 하나 척척 해내지 못하는 정산원에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된 게시판에 손윗사람에게 '뺄셈도 못하는 정산원'이라며비난 하는 모습에서 각박함을 느끼는 건 나뿐일까?

사람은 언제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정산소란 자리에 있으면서 계산을 못하는 것은 문책당할 수 있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걸 공개적인 장소에서 싸지르듯 비난하는 행위는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 실제로 본인도 정산원을 비난한 글에서 '15000-3500=7000'이라고 적지 않았던가. 물론 10500을 적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기는 15000을 적었고. 쓰는 일에 있어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 글에서도 저런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차는 밀려서 경적을 울리고 있고 앞에서는 자꾸 계산이 틀렸다며 짜증을 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이런 글들을 보면 때때로 서강대 구성원들은 이기적이고 양보심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들어 자주 올라오는 지하철에서 생긴 어르신들과의 실랑이 이야기만해도 그렇다. 어른들이 지하철에서 자리가 없어 눈치를 좀 줬기로서니 '나이를 먹고서도 개념이 없다' '싸가지가 없다'며 뒷담화를 해대고, 심지어는 앞에서 쌍욕을 섞어가며 싸웠다는 글을 올려놓고 그 어른이 문제 있는거 아니냐는 당당한 글을 보면 영 개운해보이지 만은 않는다.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감각기에 대해 배웠다. 감각이란 민감한 것이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무뎌져서 결국엔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게된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갈아서 만들어주시던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흑설탕을 그 큰 숟가락으로 서너숟갈 넣어도 '너무 달다'가 아닌 '이제야 좀 단맛이 나네'라고 얘기하시던 할머니는 분명 미각이 닳고 닳아 이젠 단맛조차 제대로 느끼실 수 없었던 것이다. 작은 소리로 얘기하면 '뭐? 뭐?'라며 몇번이고 되물으시던 수화기 너머 할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우리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감각기의 문제라기보단 병환과 연세 때문이지만) 그렇게 힘이 넘치고 건강하시던 분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반신에 마비가 오더니 다시 걸으실 수 있게 되셨지만 2, 30분만 걸으시면 이내 힘이 들어 짜증을 내시곤 한다. 아직도 팔씨름으로 이길 수 없는 아버지가, 신발을 묶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시는 모습은 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어릴적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와서인지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계시는 어르신들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정정해보이시는 어른들이라고 할지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이는 몸을 속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웃으며 비켜드리곤 한다. 그럼 어르신들은 괜찮다며 사양하시다 이내 고맙다며 자리에 앉고는 하신다.

세상에 분명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자리로 인해 눈치좀 줬다고 그런 어른들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고작 지하철 한 자리 좀 서가면 어떻단 말인가? 취업 스펙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힘든 봉사활동은 자처해서 하면서, 어르신들께 자리 한 번 비켜드리면 다리라도 부러지는건가. 자리를 비켜주는 건 상관이 없는데 그런걸로 눈치주는 일이 싫다는 얘기도 있던데, 애초에 자신이 조금 양보한다는 마음으로 먼저 웃으며 자리를 내드리면 그런 일도 없다. 실제로 먼저 자리를 양보하곤 하는 나는 지금껏 게시판에 올라오는 일들처럼 어른들과 실랑이를 벌일 일이 없었다.

어른이 뭐 대수냐, 어른이 벼슬이냐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때때로 만나곤 한다. 하지만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던 말처럼, 고작 나이 스물 먹은 우리보다 몇 십년은 오래사신 그분들이 이 세상에 이뤄놓은 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분들이 우리보다 덜 배우진 못하셨을지라도 고졸이신 우리 아버지가, 중졸이신 우리 어머니가 서강대의 그 어떤 학생보다도 더 지혜로우시다.

어른들을 책하기 전에 우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하철에서 자리 때문에 눈치를 주는 노인들보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으로, 활짝 펼친 신문으로, 친구들과의 잡담으로 알게모르게 소란을 일으키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곳이 2008년 서울의 모습이다. 술마시고 주정부리는 어른들이 싫다? 금요일 저녁 신촌은 술에 취해 말썽을 부리는 젊은 대학생들때문에 출동하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로 주말이 왔음을 알린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어른들이 싫다? 코믹마켓이 있는 날 지하철에는 현란한 코스프레를 한 학생들의 소음이 가득 메운다. 불리해질 것 같으면 나이 얘기 꺼내는 어른들이 싫다? 우린 고작 서너살 차이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며 어린 것들이라며 혀를 차곤 한다.

언젠가 99학번인 선배와 술을 마신 일이 있다. 선배는 '어른들을 고만고만한 네 잣대로 평가하려 들지 마라'는 충고를 했다. 이런 말을 하는게 오만한건지,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시간에 야만인 담론이다 문화상대주의다 배우고 떠들어대는 똑똑한 서강인들이, 본인만의 잣대로 모든걸 평가하고 어른들을 되려 가르치려하는 모습은 씁쓸하다.

어른들의 티끌은 보면서 과연 우리 눈에 들보를 우린 깨닫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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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주는 교훈, 왜케 정색을 하나? 세상 좀 너그럽게 살면 안되나? 세상이 정말 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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